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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색중인 것에 대한 노트

언젠가부터 혜인을 읽는 일이 나를 기르는 일이 됐다.

 

“낯가리는 독서모임 멤버를 구합니다”

그 공지를 본 게 3년 전인가. 책방을 운영했지만 독서모임에는 참여해본 적도 없었고 직접 모임을 만들어볼 생각도 없었다. 왜 사람들이 독서모임에서 책이 아니라 다른데에 더 열중인걸까 의아했다. 내가 그렇게 될 줄은 까맣게 모르구…

‘낯가리는 독서모임’을 만든 사람은 바로 이혜인이었다. 여러 매거진의 판권면에서 자주 본 이름이었다. 만난 적은 없지만 우리 사이엔 많은 고리들이 있었고 알고리즘은 나에게 이혜인을 소개했다. ‘만나지 말고 책만 돌려보자’는 모집글에서 느껴지는 쾌적함에 끌려 나는 바로 신청서를 냈고 매우 공정한 선발기준(이혜인 마음에 들어야함)에 따라 합격했다.

지금 눈 앞에 없는 혜인을 떠올려보면 심드렁한 표정과 늘어진 자세부터 생각난다. 그리고 혜인은 입을 삐쭉거리며 말할거다. “야!!김수진! 뭘 그런 걸 가지고 우냐…”(귀에 선하다) 참고로 혜인은 나보다 어리고 우린 아직 친해지는 중이다. 다른 사람이 했다면 속상했을 말도 혜인 입에서 나오면 괜찮았다. 나는 우리가 아주 다른 사람이고, 혜인의 존재가 그 자체로 나에게 해방감을 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올 여름 분노와 증오에서 도망치듯 여행을 떠났을 때, 우린 아침마다 축축하게 젖은 제주의 오름을 함께 걸었다. 그때마다 혜인은 길가에 핀 이름모를 잎들을 뜯어 손 위에 올려보였다. 이건 무슨 풀인데, 무슨 향이 나구, 어쩌구 저쩌구....나는 먹어도 되는 풀인지 아닌지가 궁금했지만 혜인은 나란히 걷던 우리가 멀어져도 손바닥 위에 올려둔 풀을 보면서 향에 관한 이야기를 주절거리고 있었다. 
 
혜인은 늘 그런 식으로 나를 달래왔다는 생각이 든다. 스트레스 때문에 러닝을 시작했다고 했을 땐 샤워 후에 뿌릴 바람 같은 향을 만들어줬고, 근육통으로 잠을 못잔다고 했을 땐 아로마 오일이 도움이 될거라며 건넸다. 내가 감동받아서 울면 어이없다는 얼굴을 하고는 말했다. "야! 김수진! 우냐???" 
 
그런 혜인이 자신을 키운 냄새들에 관해 썼다. 기울어진 사랑에 드러난 냄새에 관해, 가족의 냄새에 스민 역할과 책임에 관해, 잘못 마른 빨래 냄새에서 읽은 혐오에 관해. 혜인은 자신을 키운 건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 평화로운 날들보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순간들이었다고 썼다.
 
촉수가 많고 예민한 사람들은 세상을 기민하게 파악하지만 그만큼 쉽게 지치고 또 망가진다. 오후 9시만 돼도 반쯤 감긴 눈으로 집에 가야된다고 말하는 이혜인처럼. 혜인은 눈물 대신 식은 땀을 흘리는 사람이고, 자신의 예민함이 누군가를 해칠까봐 노심초사 하는 사람이다. 그런 혜인이 작가로서 첫 책을 냈고, 새로운 출발에 힘이 되어 주고 싶어서 조수석에 앉아보기로 했다. (면허 없음)

독서모임은 결국 다른 사람이 세상을 읽는 방식을 알게 되는 일이고, 그 방식에 호기심이 생기면 그 독서모임은 여지없이 책이 아니라 사람 읽기 모임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언젠가부터 혜인을 읽는 일이 나를 기르는 일이 됐다.
 

𝗕𝗼𝗼𝗸𝘁𝗮𝗹𝗸
『나를 기른 냄새』 출간 기념 북토크
일시ㅣ2024.12.13 (금) 오후 7시
진행ㅣ이혜인 (『나를 기른 냄새』 저자) 
⠀⠀⠀⠀김수진 (어쩌다 책방 디렉터)
장소ㅣ어쩌다 책방(서울시 마포구 성미산로 159 1층)
신청https://bit.ly/BOOKTALKLEEHYE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