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02. mon
올 여름은 ‘사람이 어떻게 사람한테 이럴 수 있지?’라는 의문을 양극에서 경험한 계절이었다. ‘사람이 어떻게 사람에게 저렇게 잔인할 수 있지?’와 ‘자기가 위험에 처할 걸 알면서도 어떻게 저렇게 사람을 도울 수 있지?’ 사이를 하루에도 수십번씩 오가며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고 그랬다.
세미 님은 그 계절에 나를 일으킨 사람 중 한 명이다. 처음 만났을 때에도 주고받은 말이 많지 않았는데 왜인지 마주앉을 때마다 큰 포옹을 받는 기분이 들었다. 월요일, 세미 님과 정식으로 단 둘이 만나 밤 늦게까지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몇번의 출간 제의를 고사했던 건 할 말이, 그러니까 크게 전하고 싶은 메세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할 말이 있는 사람들이 작가가 된다고 생각한다. 글을 쓰는 작가 뿐 아니라 사진 작가도, 미술 작가도. 내 위치를 굳이 정하자면 수신자, 혹은 전달자 정도라고 생각했다. 쓸 수 있는 게 없을 거라는 내 말에 세미 님은 답했다. 수진 님은 책을 공간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것에 관해 써볼 수 있지 않을까요.
세미 님을 잘 모르던 때에도 자꾸만 그쪽으로 기울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첫 책은 세미 님과 같이 만들기로 마음 먹었다.

1203. tue
화요일, 무빙씨어터 상영하는 날. 여느 날처럼 침대에 누워서 상영작을 고르고 있었다. 정보를 찾다가 포털 화면을 어지럽게 채운 “속보 윤대통령 비상계엄 선포“를 읽고도 한동안 이해하지 못했다. 뭔 또 헛소리를 했나보다 싶었지.
계엄군이 국회에 들이닥쳤단 기사를 보고 옷을 챙겨 입었다. 그 사이 강릉에 있는 남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조심해 누나. 국회에 가까워질수록 차가 밀렸다. 다리 위에 서 있는동안 하늘에 헬기 몇대가 보였는데 그 소리가 몸을 울릴 정도로 컸다. 다급하게 공기를 때리는 둔탁한 소리는 낯설어서 더 공포스러웠다. 우리 죽는건가. 영화에서만 보고 싶었던 끔찍한 현실 속이다.
국회 앞에 도착했다. 밤 12시. 벌써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누가봐도 자다 나온 기자와 취재진들이 서둘러 통화를 하고 있었다. 까맣게 무장한 경찰들이 인도 위에 무리지어 서있었고 정체모를 사람들이 이지저리 분주히 뛰어다니고 있었다. 두꺼운 겨울 외투를 입은 인파 속에 서 있자니 앞이 보이질 않았다. 국회로 들어가는 문은 이미 닫혀있었다. 인파 탓에 휴대폰이 잘 터지지 않았고 상황을 알수가 없었다. 차에 타서 라디오 속보를 켰다. 국회의원들이 계엄해제 의결을 위해 모이고 있고, 보좌관들이 계엄군들을 막고 있다는 소식만 반복해 나왔다.





1204. wed
책방 휴일 그리고 월간 회의. 계엄 해제 될 때까지 기다리느라 새벽 늦게까지 깨어있었다. 당연히 늦잠잤고 회의에 늦었다. 국가적인 비상사태 때문이라며 양해를 구하고(?) 지각했다.
연말이라 내년 목표며 계획이며 이야기하다가 예정보다 회의가 많이 길어졌다. 회의 할때 성질 안내기로 마음 먹었는데 오늘도 여지없이 씩씩거렸다. 현재 직무에는 기획과 운영을 동시에 해야하는 특이점이 있는데 그걸 전혀 반영하지 못하는 복리후생 제도가 정말 마음에 안들었다. 여력이 안되니 몇년째 어쩔 수 없다고 버텨왔지만 신입인 매니저님을 포함해 다른 팀원에게 이 제도를 그대로 적용시키는 건 곤란하다.
한시간 정도 논쟁하다가 매년 한 주를 유급휴가로 지정하는 것과 3년 근속 시 1개월 유급휴가 제도를 확정했다. 회의하면서 신라호텔 마지막 배송 끝냈다. 재주문에 재주문까지 들어올거라고 생각도 못했는데…참 좋은 기회였고 감사한 일이었다.
오후 4시 즈음엔 희천씨, 상우씨가 와서 스터디에서 잠시 이야기 나눴다. 그리고 바로 회식자리로 이동했다. 혜인 북토크 준비했어야하는데 아무것도 못해서 조바심이 났다.









1205. thu
한달 전에 받은 초대. 그때만해도 12월 한참 멀었다 싶었는데. 아무튼 혹시나 했던 일들은 다 역시나였고 용기있는 사람들이 세상을 조금 더 낫게 바꾼다•••








1206. fri
이번주 못한 일들이 고스란히 금요일 위에 쌓였다.
저녁엔 이태훈 선생님 공연이었는데 일들 처리하느라 공연을 전혀 못봤다. 속상함.



1207. sat
오후 집회. 여의도 국회 앞이 집회에 얼마나 비효율적인지 경험하면서 더 화가 났다. 전방이 트여있지도 않고, 큰 건물들이 많아서 코너를 돌지 않으면 정면에서 어떤 구호를 하는 지 알 수도 없다. 도로 폭은 좁고 길가에 정원에 언덕까지 있어서 앞으로의 접근이 너무 어려웠다. 진심 개 열받음. 카메라 들고나갔지만 찍고 싶은 의지조차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