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꽃을 살 땐 화병을 그대로 들고간다. 산책에서 쓰던 화병이 열댓개는 남아있는데다, 무엇보다 꽃집 사장님께 매번 다른 모양의 화병을 미션처럼 건네드리는 일이 즐겁다. 쾌활한 사장님은 꽃다발에도 성격을 흐드러지게 걸어두신다. 오늘은 오래 전 텍스쳐 샵에서 산 푸른 화병을 들고 갔다. 둥그렇고 푸른 미션을 건네드리고 돌아오려는 찰나 사장님이 나에게도 미션을 주셨다. "시하고 에세이 읽고 싶은데 책 추천 좀 해주실래요?" 화병을 다 만들면 책방으로 직접 가져다주신다고 하셔서 혼자 서둘러 돌아와 서가에서 책들을 꺼내 추려보았다.
『무한화서』 이성복
『꽃의 연약함이 공간을 관통한다』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
『은엉겅퀴』 라이너 쿤체
『잡화감각』 미시나 데루오키
『식물과 나』 이소영
『패터슨』 월리엄 칼로스 윌리엄스
화서란 꽃이 줄기에 달리는 방식을 가리켜요. 순 우리말로 '꽃차례'라 하는데, 여기에는 두 가지가 있어요. 성장이 제한된 '유한화서'는 위에서 아래로, 속에서 밖으로 피는 것이고(원심성), 성장에 제한이 없는 '무한화서'는 밑에서 위로, 밖에서 속으로 피는 것이에요(구심성). 구체에서 추상으로, 비천한 데서 거룩한 데로 나아가는 시는 '무한화서'가 아닐까 해요.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하려다 끝없이 실패하는 형식이니까요. ㅡ 『무한화서』 중에서
“체계가 무조건 좋은 것인가를 실제로 의심해 보는 장르는 에세이 외에는 거의 없었다. 에세이는 비동일성에 대한 의식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비동일성을 실제로 의식하는 장르이니, 에세이의 급진성은 급진주의가 아니라는 점, 모든 일원주의를 포기한다는 점, 전체보다 부분을 더 강조한다는 점, 편린이라는 점에 있다.” ㅡ 테오도어 아도르노 <형식으로서의 에세이>중에서
장르 구분없이 작가명으로만 진열된 책방에서 길을 잃는 손님들이 종종 계셔서 추천 코너를 하나씩 만드는 중이다. 오늘은 에세이 코너를 신설했다.
오늘 무빙씨어터 상영날, 열 한번째 상영작은 마이클 커티즈 <카사블랑카>. 겨우 겨우 보긴했지만 밈적인 대사들은 웃겼다,
"어제 뭐했어요?"
"먼 과거의 일은 기억나지 않아요"
"내일은 뭐해요?"
"먼 미래의 계획은 세우지 않아요"
"국적이 뭔가요?"
"주정뱅이입니다"
익숙하게 소비하는 영상의 문법과 다른 것을 볼 때는 배역의 감정이나 상황에 이입하기가 정말 쉽지가 않다. <수색자>만큼이나 버티면서 보았다. <멜로가 체질>에서 손석구가 맡은 배역이 "당신의 눈동자에 건배"라고 말하는 대사가 있었는데 드디어 그것의 실체를 확인했다는 점에서 나를 칭찬한다... 원래 대사는 "Here's looking at you, kid" 였다. 이걸 "당신의 눈동자의 건배"로 번역한 위인은 대체 누구신지....애인과 감정은 형식을 따른다는 뭐 그런 이야기 하다가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