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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색중인 것에 대한 노트

자신을 수습하는 사람의 글에선 땀이 난다.



날은 덥고 일은 더디던 여름날, 사무실 아래에 있는 바에 맥주를 마시러 들렀다. 두런두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사장님께 기타를 배우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운동하기‘처럼 늘 새해 다짐 리스트에 오르는 ‘연주하기’. 배우고 싶다는 말은 진심이었지만 작심은 아니었는데(?) 다정한 사장님은 선생님을 소개해주셨다. 며칠 뒤 같은 바에서 만난 선생님은 안 입은 것이나 다름없는 민소매에 반바지, 쪼리를 신고 어깨에 자전거를 둘러메고 나타났다. 이것이 그의 첫 인상이다. 7년 전 일이다.
 
나는 내내 선생님이 신기하다. 선생님은 한다. 술을 마시다가, 잠깐 들렸다가 공연을 만들고, 연주를 하고, 앨범을 만든다. 여러 개의 세션, 솔로 앨범, 그것을 위한 합주들까지. 어떻게 저 일이 다 진행되고 있는걸까. 하고 싶은 것이 생기면 해야할 일들의 목록부터 쓰는 나와 다르다. 어렵게만 느껴지는 일들이 밤에 라면을 끓이는 일처럼 진행되고 있다. 분명 누군가는 그가 벌린 일을 수습하느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애먹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몇주 전에는 책을 낸다고 하셨다. 조금씩 써오던 것을 정리해서 낼 거라고. 나는 선생님의 말을 듣자마자 무릎톡 자동반사마냥 해야할 일들의 목록이 스쳤다. 편집자가 있나, 교정교열은 누가 보나, 사업자를 내시려는건가? 생각하고 있는데 띠링 메세지가 왔다. 원고 전문이 들어있는 링크다. 그런데 나 아닌 다른 사람 1명이 구글 문서를 함께 공유 받은 상태다. 나는 그렇게 한참동안 다른 사람 1이 원고를 편집하고 있는 것을 실시간으로 관람했다. 웃음이 났다. 선생님과 나는 얼만큼 다른가.

자기 전 침대에 누워서 조금씩 원고를 꺼내 읽었다. 일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궁금했다. 편집은 진행중이고, 디자인도 나왔나, 출판사는 정해졌나. 나는 무얼 도와드릴 수 있을까 생각하고 있는데 메세지가 왔다.

“지금잠깐들러도될까요“
(왜인지 선생님은 가끔 띄어쓰기를 안한다)
그의 손에 책이 들려있다.
 
선생님의 글에 두 종류의 사람이 나온다. 테두리를 보면서 사는 사람과 테두리가 있었는지도 모르고 사는 사람. 나는 전자고 그는 후자다. 자신을 부지런히 수습하는 사람의 글에선 땀이 난다. 계절을 앞서 몸과 발을 내놓고 다니는 그의 실루엣에 자주 이 글을 겹쳐보게 될 것이다.


 ”말하듯이 연주를 하고자 한다고 말한다. 어떤 시점에서 그 말은 연주 그 자체 일것이고 나는 말하듯이 하는 연주를 얘기하는 그 자체로 연주를 하고 있다. 그림 같은 풍경과 사진 같은 그림을 번갈아 바라보며 내가 내는 소리가 정말 내가 내는 소리인지 세상에 나와야하는 어떤 진동이 단순히 나를 거쳐야 하는 것인지 고민한다. 나비가 꾸는 장자의 꿈에 나비가 날아다닌다. 그러다 애초에 왜 연주를, 또 말을 하고 살아야 하는지 또 왜 연주 같은 말과 말하듯이 하는 연주를 하고자 하는지 생각한다. 이미 하고 있는 것을 왜 하고 있는지를 되짚어가다 보면 자꾸 나는 더워지고 일 년 내내 땀을 뻘뻘 흘리고 다닌다. 다행히 지금은 다섯 시간을 우전해도 외투를 벗지 않게 되었다. 나는 여전히 같은 질문과 같은 답을 묻고 듣지만 이제는 선선하고 질문에 빠지는 대신 질문을 테니스 공 같이 벽에 던진다. 공은 금방 돌아오지만 벽은 소리를 내고 나는 부지런히 공을 주우러 다닌다.“ <비유집Parables> 이태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