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종일 불꺼둔 방처럼 어두운 날이었다. 찬 바람 때문에 옷없이 드러난 목덜미에 소름이 돋았다. 퇴근하면 곧장 집에 가서 뜨근한 오뎅탕이나 끓여먹어야지'하는 생각이 드는 날, 당장이라도 욕조에 몸을 담그고 싶은 그런 날, 그런 날은 어김없이 손님이 없다. 갑작스럽게 변하는 날씨 앞에서 사람들이 다 고만고만 귀여워지는 거 같다. 오픈 초기에는 손님이 없으면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는데 일희일비 할 거 없다는 걸 이젠 알지...그런 날이 있어도 한달 단위로 보면 결국 크게 차이가 없더라고...이젠 손님이 없는 날을 반길 줄도 안다. 이때다 싶어 쌓인 일들을 후다닥 해치웠다,
오늘은 무빙씨어터 상영날. 아홉번째 영화는 오손 웰즈의 『시민 케인 Citizen Kane』이다. 무빙씨어터를 시작하게 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찝찝함 때문이었다. 책을 읽다보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이름이 있었다. 존 포드, 장 뤽 고다르, 페데리코 펠리니, 루이스 뷔뉴엘, 잉마르 베르히만, 알랭 레네, 오즈 야스지로, 구로사와 아키라…감독들의 영화를 본 적이 없으니 이름이 적혀있는 자리는 까만 구멍으로 읽혔다. 저자가 그 영화를 보고 감응했을 무언가를 가늠하지도 상상하지도 못한다는 사실 때문에 책을 읽고나면 언제나 미진하고 찝찝한 느낌이 남았다.
마침 최근에 읽던 책에 재차 또 등장한 감독이 있었으니, 그는 오손 웰즈. "내러티브라는 측면에서 보면 눈부심을 안겨주는 장면이다. 프루스트의 마들렌 장면(마들렌이 찻물에 닿을 때 기억들이 쏟아져 나오는), 아니면 <시민 케인>의 스노볼 장면(광분한 케인이 자기가 떠나온 모든 것을 상징하는 스노볼을 처음 손에 쥐는)에 비견될 만한...." '시민 케인'에 크게 동그라미를 그려두었다가 집에와서 무빙씨어터 프로그램 리스트에 그 이름을 적어넣었다.
요즘 자주 에너지를 소진시킨 채로 퇴근하는 거 같다. 좋은 일도 있고 새롭게 시작하는 일도 있어서 조금 들떠있다. 퇴근 후 애인과 대화할 시간에 자꾸만 전원이 꺼져서 미안하다. 조용히 꺼지면 모르겠는데 괜히 짜증부리고 심술내면서 꺼짐. 미안해. (1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