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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가리는 독서모임 Shy Reading Club

2년 전쯤 인스타그램에서 팔로우하고 있던 한 사람이 '낯가리는 독서모임' 멤버를 구한다는 공지를 올렸다. 독서'모임'과 대척점에 있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느껴지는 공지문이었다.
 
"멤버들은 모이지 않는다"
"한 사람이 책을 다 읽으면 다음 사람에게 넘긴다"
"책을 시작할 때 각자의 펜 색깔을 정하고 읽는 동안 자유롭게 메모와 밑줄, 코멘트 등을 남긴다." 
"필요하다면 참고자료를 출력해 덧붙여도 된다."
"지원방법: 읽고 싶은 세 권의 책과 그 책에 대한 코멘트를 작성해서 보낼 것"
 
하지만 결연한 의지는 '만나지 않는다'에만 있었다. 독서 마감 기한, 책을 주고받는 방법, 책 선정 기준 등 세부적인 내용은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었다. 그 헛웃음 나는 헐렁한 공지글이 좋았다. 친구가 된 후 모임장은 내 생일을 맞아 이런 내용의 편지를 준 적이 있다. ”나는 너를 안 뒤로 계속 싱거운 장난과 딴지를 걸고 싶다. 언제나 치열한 네게 바람 빠진 시간을 주고 싶은 것일지도…무언가 펑 터질 것 같은 느낌이 들 때 언제든 나를 불러라. 근데 택시비는 니가 내라”
그렇다. 이 모임은 모임장의 성격 그 자체였던 것이다.

독서모임 지원 메일을 보낸 후 한 달쯤 지났을까, 모임장의 선택을 받은 네 명의 멤버가 단체 채팅방에 초대되었다. 그렇게 낯가리는 다섯 명의 독서모임이 시작됐다. 독서모임을 시작한 지 2년이 지났고 '낯가리는 독서모임'은 '낯 안가리는 독서 안 해 모임'이 됐다.

2024년 2월 우리는 함께 첫 여행을 다녀왔다. 이 모임 안에서 나는 우정을 배우고 있다. 발칙하고 귀여운 사진들을 자랑하고 싶지만 사랑하는 친구들의 사생활과 사회생활을 걱정하며 자체 심의를 통과한 사진들을 공개한다.

여행동안 앞장서서 우리를 이끌어준 퍼스트펭귄 현아, 모든 곳에서 보이지 않게 배려해준 수언, 예수이자 부처같은 말씀으로 언제나 우리를 품어주는 수정, 무엇보다 우리를 느슨하게 연결시켜준 부드러운 아름다움을 가진 혜인에게 고맙다.


 
 
 

유리창에 친구를 그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