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네 명의 이모가 있다. 모두 가까이 살고 어릴 때부터 사이가 좋았다. 10년 후에도 지금의 생각들이 그대로일지 궁금해져 기록해두고 싶다.
큰 이모는 작은 일에도 마음을 크게 써 병이 자주 난다. 가령 미용실에서 한 머리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 달 내내 머리 스타일로 스트레스를 받다가 디자이너를 미워하고 결국 신경증에 걸려버린다. 본인의 자식들에겐 엄격하고 다른 사람들에겐 한 없이 너그럽다. 내 자존감의 3할는 큰 이모의 칭찬에서 왔다. 초등학생 시절 “넌 엉덩이가 커서 애는 잘 낳겠다.”라는 말을 들은 후 트라우마가 생긴 나에게 이모는 잡지를 보여주며 외국엔 너보다 더 엄청난(?) 사람들이 있다며 이런 사람들이 모델도 하고 그런거라며 그런 몸을 갖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려줬다.
부자 이모라 불리는 둘째 이모는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했다. 꾸준한 관리 덕에 가장 젊어 보이는 이모다. 어릴 때에는 내가 이모의 딸이였다면 어땠을까 자주 상상했었다. 성인이 되고 나서야 알게 된 사실은 그녀의 남편은 자신이 벌어온 돈으로 생활한다는 명목으로 괴팍하게 굴며 이모를 자주 힘들게 한다는 것이다. 매일 절에 가 108배를 생활로 하며 봉사활동에 전념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셋째 이모(이건 우리 엄마다). 얼굴도 안보고 데려간다는 최가네 셋째 딸. 애석하게도 그렇게 출중한 외모는 아니다. 30년동안 한 직장을 다니며 삶을 꾸리는 남편과 안정감있는 생활을 하고 있지만 어린 시절의 나는 그게 지루하고 멋없는 삶이라 생각했다. 결혼 이후 내내 전업주부로 살았지만 직장인으로 30년을 산 남편보다 더 열려 있고 해박하다.
넷째 이모. 지독한 시집살이로 늘 얼굴에 뼈를 드러내고 다니지만 이모들 중 가장 오래, 열심히 커리어를 쌓아온 이모다. 무능력한 남편 대신 가장을 자처하며 집안의 주도권을 갖고 있는 사람. 명절마다 결혼에 대한 가능성을 묻기보다 “능력 있음 결혼 안해도 돼. 결혼해도 절대 일은 그만두면 안돼.”라든지 “승진은 잘 되는 회사니? 출산 휴가는 가능하니?” 같은 것들을 확인한다.
다섯째, 막내 이모. 유일하게 대학에 간 이모다. 내 인생의 첫번째 ‘성인 여성’으로 기억되는 사람. 이모는 화려한 화장에 색깔을 넣은 안경을 쓰고 대여점에서 책과 비디오 테이프를 잔뜩 빌렸다. 이모 방에는 각종 소설책, 화장품, 여러 색깔의 안경들이 가득했다. 명절마다 이모방에 들어가 몰래 하나씩 걸쳐보며 이모를 흉내냈다. 어느 명절에 데려온 남자와 결혼을 했고 오랜 해외생활을 했다. 하지만 아이들이 학교에 채 들어가기도 전 사별을 했다. 이모가 그동안 갖고 있던 색깔들이 점점 사라지는 것을 보며 사람의 인생은 정말로 알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모들의 삶 중 누구의 것을 더 취하고 싶냐고 뻔뻔하게 자문하기도 했다. 부유하지만 평탄하진 않은 삶, 평탄하지만 부유하지 않은 삶, 주도권이 있는 삶, 화려한 삶. 그것들이 간단히 요약할 수도 없고 언제든 변할 수 있는 상태에 불과한 것임에도 내 선택에 확신을 갖지 못할 때마다 이모들의 삶을 자주 떠올려보곤했다.
자신이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미련이나 선택에 대한 후회들을 생각하다보면 이모들을 사랑하게 된다. 이모들은 이미 알고 있었을까. 최선도, 최고도 언제든 최악으로 변할 수 있다는 걸. 하지만 이 다섯의 여자들은 서로의 불행을 위로 삼지 않는다. 서로의 선택이 최선이 될 수 있도록 돕고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게 내 생에 처음으로 목격한 연대일 것이다.
다섯 여자에겐 어릴 때부터 공통의 적이 있었다. 여자란 이유로 다섯 딸들을 홀대하는 아빠. 세번째에도 기대했던 아들이 아닌 딸이 나오자 할아버지는 셋째 딸 이름을 ‘또순’이라고 막 지었다. 그게 우리 엄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