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로운 프로젝트를 기획하면서 가장 먼저 하고 싶었던 것은 실수를 정리해보는 것이었다. 그런 용도라면 고등학교 시절 쓰던 오답노트와 다르지 않은데 정확한 답이 없다는 점이 다르다. 아무도 채점 못하는 시험이다. 고심해 풀고 과정을 잘 기록해두고 싶다. 잘하고 싶은 마음은 욕심이 아닌 줄 알았다. 후회하는 일을 반복하지 않는 것, 이전의 나보다 나아지는 것이 정답없는 오답노트의 목표다.
생각날 때마다 메모장에 하나둘 쓰기 시작한 오답들이 예상보다 굉장히 많아(ㅜ_ㅜ) 설계편/기획편/운영편으로 나눈다. 설계는 기획, 운영과 달리 한번 정해지면 바꾸기가 어려우니 가장 먼저 써보기로 한다. 설계라기엔 너무 거창하고 공간 구성편 정도.


1. 바닥 마감
현재 책방으로 사용하는 공간은 가구가 급하게 들어가는 바람에 바닥 마감을 못했다. 석재를 그대로 쓴 바닥. 보기엔 멋스럽다. 돌의 질감이라니~무게감이 느껴지고 진중해보이는군~ 아니다. 신발에 흙이 조금이라도 묻은 손님은 아가들 삑삑이 신발 신은 것 마냥 걸음마다 빠직빠직 소리를 내며 걸어다녀야한다. 돌이 돌을 만나 부서지고 쪼개지는 소리. 특유의 질감 때문에 잘 쓸어지지도 않아 책방 매니저님은 청소기와 테이프를 동원해 매일 바닥과 씨름했다. 실제로 면접 볼 때 정리정돈과 청소에 취미가 있으신지 여쭈었다.

2. 벽 마감
급하게 가구가 들어가는 바람에 벽도 콘크리트 마감을 그대로 두고 서가를 설치했다. 이쯤되니 공사를 안 급하게 할 수도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 마감을 안한 콘트리트 벽은 가루가 날린다. 겨울이면 한기를 잔뜩 머금어 책방이 아니라 이글루다. 콘크리트에 호되게 당한 후로 두번째 책방(산책)은 벽, 책장 뒷면 모두 가벽과 나무로 마감했다.

3. 계산대 크기와 구조
현재 책방 책상의 가로 사이즈는 2000
그중 포스와 금전함이 600
모니터 800
남은 공간 600
직원 공간과 계산대는 모든 공간에서 가장 눈여겨보는 곳이다. 두 위치가 그 가게 또는 브랜드가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백화점의 직원 전용 통로를 보고 놀랐던 이유기도 하다.) 특히 계산대는 운영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는 지, 손님과 마주하는 순간을 얼마나 세심하게 디자인하는지 알 수 있는 곳이다.
책상에서 진행되는 일의 종류는 이렇다. 손으로 쓰는 멤버십 가입, 책 도착 시 수량 및 항목 확인, 선물 포장, 행사 진행 시 토크 및 사인 진행, 관계자 응대, 종종 사진 촬영 등. 그런데 업무에 필요한 기기를 올려두고 나면 남는 길이가 600뿐이다. 내 한쪽 팔 길이다. 손님을 응대할 때는 번거롭게 노트나 책 등 개인 물품을 다 치워야한다. 운영 경험이 없을 때 공간의 비율만 고려해 제작한 것이 아쉽다. 최소 1500사이즈의 책상이 앞뒤로 두개 있어야한다.

4. 문
레일로 된 미닫이 문, 잘 쓰면 괜찮지만 시공을 잘못했다. 바깥면에 레일이 설치되어야하는데 안쪽에 했다. 책방은 유리문을 따라 길게 벤치가 놓여져있는 레이아웃인데 그 벤치에 손님이 앉아있으면 누군가 문을 열 때마다 앉아있는 손님의 등을 ‘갈긴다’. 별안간 누군가가 등짝을 철제 문으로 후드려친다고 생각해보자. 그 기분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겠다. 불행히도 레일 문의 악몽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해가 갈수록 레일은 철제 문의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가라앉았다. 닫히는 면과 점점 어긋나기 시작하더니 2년차부터는 천둥소리를 내며 열리고 닫혔다. 공사 후에도 나아지지 않아 스펀지로 된 도어 스토퍼를 끼워 지냈다. 잘 사용되고 있는 레일형 철제 미닫이 문을 만나보고 싶다.

5. 조명
아… 참담하다… 조명이 제일 문제다. 두번째 책방에서도 보완되지 못했던 유일한 항목. 책장과 조명의 거리가 가까워 책장 그림자가 책 위로 드리워져 표지 절반을 가린다. 책 제목이 대부분 책 상단에 있는 걸 생각하면 이건 정말 문제다. 책장과 천장 매립 조명의 충분한 거리가 필요하다. 실제로 구현되기 전까지 가장 가늠이 안되는 부분이 조명이다. T5로 가로지르는 것도 싫고 둘레로 레일 돌리는 것도 싫고. 싫으면 대안을 내야되는데 조명 모른다 몰라.

6. 수납
책 수납이니 책장이 많으면 되겠지~룰루~ 바보. 박스형태로 수납을 해야하는 경우가 많다. 배송이 오거나, 보내거나 할 때 쓸 큰 수납이 필요하다. 벌크로 주문하는 종이가방, 포장 종이 등을 구겨지지 않게 수납하려면 가로세로 800 이상 수납이 필요하다. 서랍형 수납은 최대한 하지 않는다. 레일이 책 무게를 못버텨 나무를 뜯어내면서 떨어지는 파국을 맞이할 것이다.
정답은 없는 시험이지만 ‘아 이건 진짜 아니지 않나’항목들을 쓰고보니 시무룩해진다. 과연 오답노트 즐겁게 읽고 쓸 수 있는 글인가. 다 쓰고 나면 자신감 있게 동그라미 그렸던 이야기들 써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