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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색중인 것에 대한 노트

문제는 루프 어쩌고가 아니라 나선형으로 나아가는 (927)

 

 
리움 다녀옴. 오면 알려달라던 언니한테 연락하고 싶었는데 그거 있잖아… 진짜 좋아하는 사람앞에서 뚝딱거리는 병. 나는 그 언니 앞에만 서면 뚝딱이가 된다. 전시보는동안 연약하고 가녀리지만 어딘가 뾰족한 구석이 아름다운 그 언니를 자주 생각했다. 리움은 그룹전 보러 간거였다. 희천씨 작업이 있었기 때문이다. 에르메스에서 본 스터디도 좋았는데 이번 전시에 소개된 작업도 좋았다. 2018년 <메셔>라는 작업이었는데 보면서 메모장에 뭘 많이 적었다. 문제는 루프 어쩌고가 아니라 나선형으로 나아가는, 이재영 Facetime... 어쩌구 저쩌구.
 
그나저나 전시 보면서 그룹전에 영상작업은 하나만 있어야되는 게 아니냐고 이야기했다. 전시 한번에 영상을 네다섯개보고나면 현실감각이 없어져서 전시장 나가는 길 까먹음. 대숏츠시대에 수십분짜리 영상작업을 한데 모아두는 건 너무 가혹해. 희천씨 작업 보고난 후에 영상 작업은 이걸로 끝이다 생각했다.

전시는 여러 개의 방으로 구성돼있었다. 통로가 꽤 좁고 꼭 미로 같았는데 즐거움도 잠시… 머지않아 두통으로 고생했다. 여러모로 고통 속에서 본 전시였지만 뿌듯한 수확이 있었다. 낯선 이름의 두 작가를 알게된 것인데,. 대만의 리 이판 Li Yi-Fan과 헤 지케 He Zike 작가다. (헤 지케 작업 좋아서 언니라고 부르려고 했는데 동갑이네. 이제 어딜가도 어리지가 않네. 예쁘고 잘하고 멋있으면 언니지 뭐. 몰라^_ㅜ)
 
연말까지 이변이 없는 한... 리 이판 작가는 올해 최고로 기억할 것 같다. 공포를 조장하는 기괴한 외모의 캐릭터, 그런 외모와 상반되는 지적인 유머와 농담들, 생각지도 못한 연출과 장면전환...두서 없는 메모를 가장 많이 적었는데 작품 중반부터는 그것도 그만두고 넋놓고 보았다. 
 
저녁에는 Moving Theater 재개관 첫 작품으로 홍상수 감독의 <우리의 하루>를 틀었다. 겨우 다 보고 나서 애인한테 너가 보자고 했자나.. 했더니 애인이 모야 너가 보자고 했자나..했다. 서로가 보고싶어하는 줄 알고 참고 보았던 거였다. 애인에게 영화사에서 홍상수 영화는 어떤 의미가 있는거냐고 물었고 애인은 이래저래 답해주었는데 나는 아무것도 인정할 수가 없었다. 솔뫼 작가님의 소설과 비슷한 느낌이 있었지만 그건 좋고 이건 싫은걸…노골적으로 눈에 보여서일까.
 
리움부터 Moving Theater까지 하루의 절반을 영상을 보는데 썼다. 소파에 지쳐 널부러져서 손에 잡히는 책을 펼쳤는데 이런 질문이 있었다 "나열된 집의 각 구성 요소를 나의 삶에 영향을 가장 많이 미치는 순서에 따라 배치하시오." 함께 살 집을 생각하는 와중에 매우 쓸모있는 질문이었다. 설계를 맡기는 건축주의 심정이 되어 답을 적어나갔다.


나 바깥 (괄호는 애인)
1위. 서재 (서재)
2위. 수납 (화장실)
3위. 화장실 (거실)
4위. 침실 (침실)
5위. 거실 (식당)
6위. 주방 (옷방)
7위. 세탁 (현관)
8위. 식당 (주방)
9위. 옷방 (수납)
10위. 외부공간 (외부)
11위. 현관 (세탁)
12위. 다용도실 (다용도실)
13위. 파우더룸 (파우더룸)
14위. 차고 (차고)

나는 주방 순위가 식당 보다 높고 애인은 식당 순위가 주방보다 높았다. 이것은 요리 하는 사람과 요리 안하는 사람의 차이다. 제일 많이 차이나는 공간은 세탁과 현관. 두 개가 정 반대 순위에 있음. 이거 할 때만해도 몰랐는데 애인은 왜 이렇게 현관 순위가 높은거지? 작은 차이가 있지만 우리는 최상위 항목과 최하위 항목이 거의 같다. 서재, 화장실, 침실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차고, 파우더룸, 다용도실이 최하위다. 한달동안 긴 여행을 하면서도 안싸운 이유가 여기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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