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vaneborg Kardyb <Haven>
글의 머리에 종종 달아두는 음악은 책방에서 자주 재생하는 앨범들이다. 글을 읽거나 쓰는데 크게 방해가 되지 않는 음악들. 혜화 님, 느티 님과 함께 마셨던 와인 이름도 Haven이었지. 그해 여름 산책에서 참 많이 마셨는데 벌써 5년이 지났다. 다들 잘 지내고 계실까. 올 연말엔 촌스럽더라도 연하장을 꼭 만들어 봐야지.
이번주 주영 매니저님과 같이 시음할 커피는 로우키. 책방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다. 마포구에 웬만한 로스터리는 다 있구나. 정말 좋다. 최근에 같이 시음했던 속초의 라이픈커피도 참 좋았는데 며칠 전 갑작스런 영업 종료 공지를 보고 아쉬움이 컸다. 번창하셔서 확장하시거나, 다른 좋은 일이 생기셨거나 등등 뭐든 좋은 이유였으면 좋겠다. 운영자 선생님들의 마음만 평온하다면 내 아쉬움은 아무 상관 없지 모.
월요일엔 조용했던 책방이 오늘따라 붐빈다. 참말로 종잡을 수 없는 동네다. 보글거리던 책방이 조용해진 오후 즈음, 분홍옷과 초록옷을 조화롭게 매치한 손생님*께서 조심스레 다가와 물으셨다. (* ‘선생님’쓰다가 오타났는데 이 단어 좋다. 손님+선생님의 뜻으로)
”책 추천도 해주시나요?“
“네~그럼요~ 필요하신 책이 있으세요?”
”제가 요즘 힘든 시기예요. 인생 밑바닥이고…“
책 추천을 요청하시면서 자신의 처지를 서스럼없이 이야기하는 손님은 처음이었다. 말씀하시는 얼굴을 보다가 눈물이 날 것 같아서 손을 꽉 쥐었다. “그럼 제가 조금 고민해봐도 될까요?” 서가를 살피는 척하며 주책맞게 튀어나온 눈물을 서둘러 말렸다. 무엇 때문에 힘드신지 더 물을 수도 없고 물어서는 안되는 일이다. 정확한 추천이 될 수 없으니 내가 아는 한 도움이 될만한 책을 다 꺼내드린다. 어떤 책을 좋아하시는지 혹은 즐겁게 읽으셨던 책이 있는지 여쭈었다. 책을 읽을 시간도 없었고, 많이 읽지 못했다고 말씀하셨다. 서가에서 몇권을 꺼내 앞에 놓아드렸다.
존 버거 『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
한정원 『시와 산책』
박솔뫼 『믿음의 개는 시간을 저버리지 않으며』
토베 얀손 『두손 가벼운 여행』
꼽고보니 내가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겨울을 보내던 시절에 읽은 책들이었다. 손님은 『시와 산책』과 『두손 가벼운 여행』을 데려가셨다. 책을 포장해드리면서 봉투에 작은 선물을 함께 넣었다. 어두운 얼굴로 자신의 인생이 밑바닥이라고 고백한 사람을 어떻게 그냥 보내… 정말 아름다운 기운의 선생님이셨는데, 부디 밑바닥에 선생님을 닮은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넣으신 후 훨훨 날아오르셨으면 좋겠다. 오늘은 책방에 있는 책으로 골라드렸는데, 권해드릴만한 다른 책이 더 있는지 찾아봐야겠다. 또 그와 비슷한 얼굴을 마주하게 될 지도 모르니. 그래. 더 알고 싶게 하고 잘하고 싶게 만드는 걸 보면 손님들은 정말 다 선생님.
’모든 방은 스스로를 복원하며 방 바로 그 자신이 될 것이다’ — 『고요함 동물』 박솔뫼, 창비